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문단 편집) === 하이델베르크, 베를린 시기 === 헤겔의 높아진 평판과 지속적인 그의 노력 덕분에 1816년 마침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하이델베르크 대학]]이 헤겔에게 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보수에 관해 잠시 협상을 한 후 헤겔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46살의 중년이 된 헤겔은, 하이델베르크에서 화목한 가정과 직장에서의 교수 생활을 즐기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헤겔을 둘러싼 세계는 변했고, 그에 상응하여 헤겔의 생각과 체계도 변했다. 이제 헤겔은 자신이 혁명을 말하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이미 일어난 혁명을 어떻게 지속하고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철학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1817년에 발표한 『철학대계 (엔치클로페디)』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정립된 근대적 이념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철학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이 시절에 헤겔은 헌법에 관한 논쟁에 뛰어들게 되면서, 스스로 "객관 정신"이라고 말했던 사회 제도와 법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러는 와중에 프로이센 문화부 장관으로 막 임명된 알텐슈타인이 베를린으로 헤겔을 부르자, 헤겔은 1818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베를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헤겔은 베를린 대학에 있으면서, 독일 국가들이 어떤 헌법을 가져야 되는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법철학 요강』을 1820년 발표한다. 이 책에서 헤겔은 "자유" 자체에 대한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국가와 법에 의해 조건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했다. 헤겔에 따르면, 자기 비판적인 각각의 개인들은 자신의 이성적 생각과 자유에 따라, 스스로가 다른 개인들과 유기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만한 "전체" 구조 속의 한 지점을 찾아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은 미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꾸로 "전체"는 "민중"이 집단적으로 합리적(이성적)이라고 설정하는 것에 대한 이해에,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 즉, "전체"는 오직 합리적인(이성적인) 개인들이 자유롭고 집단적으로 창출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법"에 의해서만 기획될 수 있고, 이를 통해 획득한 다양한 법률적, 규제적, 조합적 구조들이 "전체"에 윤리적 권위를 부여할 때, 개인은 그 권위를 기준삼아 "전체"를 조망하고 스스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헤겔은 이 "전체"를 [[국가]]라고 보았다.[* 「다만 헤겔은 민주주의와 지역구 투표제를 거부하고, 대의제적 정부 형태를 주장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서는 다수 정당이 소수의 이해를 단순히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며, 지역에 기반하여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것은 그들이 "전체" 사회를 대표하는지, 혹은 심지어 그들이 대표해야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해를 대표하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선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계층과 소속 단체에 소속감을 가지는 한에서, 계층과 단체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제는 모든 합법적인 목소리가 "국가" 수준에서 나오는 것을 좀더 확실하게 보장할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사회의 기본적인 이해를 확실하게 대변하고 사회의 안정성이 유지될 수 있는 방법으로 "귀족" 의회와 "평민" 의회가 있는 양원제를 주장했다.」 (테리 핀카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이제이북스, 2006, p.623)] 이것은 정치철학을 역사철학으로 몰고 간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한 이러한 설명[* 이성의 "전체"(『논리의 학』에서 말했던 '이성들의 공간' 또는 '이념'을 뜻한다)는 "민중"이 집단적으로 합리적(이성적)이라고 설정하는 것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다는 설명. 즉, '''이성의 개념(이념)은''' (개인의 논리적 추론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민중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매우 쉽게 말하자면, 이념은 '그 시대의 집단 지성'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이 국가의 법이라고 말했던 것.]은, 역사적으로만 수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세계사의 철학에 관한 짧은 몇 단락으로 『법철학 요강』을 종결지었다. 그리고 헤겔은 후에 일련의 강의를 통해 이것(역사철학)을 확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